법률가인 동시에 시민으로서의 정치가 필요한 시기, 윤석열 퇴진을 넘어 더 많은 권리를 이야기하자
헌법과 법치주의가 휴지조각이 된 날, 예비 법률가로서 또 시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계엄사령관 포고령이 발표되었다. 국회와 정당을 비롯한 일체의 정치활동 정지, 집회 시위 결사의 금지, 언론과 출판의 통제, 파업의 금지, 위반시 처단. 포고문 문장 하나하나가 대한민국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차례대로 짓밟았다. 법률가 출신 대통령의 지시라고는 믿을 수 없는 발표였다. 나는 그를 학교 선배로도 법조인 선배로도 대통령으로도 인정할 수 없다.
포고문의 문장은 잠시나마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위법이고 위헌이라는 말을 외치기도 전에 경찰은 국회를 포위해 국회의원조차 출입을 통제했다. 300여명 가까이의 계엄군은 헬기를 타고 총을 든 채로 국회로 진입해 무력장악을 시도했다. 국회의장과 여아 당대표에 대한 체포조가 가동되었다. 경찰청장은 4시간 전부터 대기했고, 비상계엄 발령 15일 전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사유를 명목으로 은행을 통해 사회단체 회원들의 인적 사항을 입수했다. 그 순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헌법도 계엄법도 아닌 총을 든 군경 개개인의 판단에 달려있을 뿐이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모여 계엄해제안을 가결한 것은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여들어 계엄해제를 요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계엄령은 해제되었고 윤석열에 대한 퇴진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탄핵안이 발의되었다. 72시간 안에 국회는 탄핵안에 대한 표결을 마쳐야 한다. 그 뒤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잇따를 것이다.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경찰청장을 포함한 책임자에 대한 형사절차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한 절차와 시간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지, 법에 의해 파면될지, 누가 처벌받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일하고 살아갈 사회의 미래는 국회의원과 법관에게만 맡긴 채 기다릴 수 없다.
윤석열 퇴진, 그 이후의 권리를 더 나은 법으로 그려나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어야 한다
지금 당장 요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장 퇴진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만 바뀐다고 사회가 바뀌지 않음은 8년 전의 기억을 통해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모두가 느꼈던 실망감이 바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기반이 아니었는가? 지금 우리의 요구가 윤석열 퇴진, 책임자 처벌에서 멈추면 비극은 또다시 반복된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은 사회구성원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배운다. 법률가라는 직업은 그런 의사의 해석을 통해서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과연 정말로 그러한가? 앞으로 또다시 헌법과 법률이 휴지조각이 될지 아닐지의 여부는 법률가의 해석으로서는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다.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 투표하는 날만이 아닌 매일매일을 사회의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점을 서로가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줄 때 법률에 적힌 권리들은 비로소 현실에 존재하는 힘이 된다.
법치가 짓밟힌 것은 어젯밤만이 아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시민의 권리는 꾸준히 짓밟혀왔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갈라치기 정치, 주69시간의 노동시간 개악시도, 화물연대와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 최저임금 차등적용 시도, MBC에 대한 보복성 조치, KBS 이사회 장악, YTN 민영화 등 언론탄압, 국가인권위원회 무력화, 법인세 인하와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등 사회보장제도 후퇴, 이태원참사 정부책임 부정,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동의 등 굴욕 뒤통수 외교, 동북아 군사긴장 고조, 끝없는 거부권 행사… 매일같이 학교에서 권리가 무엇인지 배우지만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정작 그 권리를 현실에서 잃어버리는 것에 무감각해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계엄령은 해제되어도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법치가 무너지고 헌정이 중단된 시기, 법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느껴왔던 작은 부조리부터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귀기울이자. 내가 지금 시험공부를 위해 열심히 배우는 법은 누구의 의사를 언어화하고 있는 것인지 한번 더 고민하는 시간으로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