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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국가, 그 너머의 ‘우리’

과학학과 석사과정 대학원생 3인 연명

당신들의 국가, 그 너머의 ‘우리’

12・3 비상계엄 선포와 정치의 죽음


 비현실적인 밤이었다. 국회에서 시위대와 군인들이 뒤섞이는 모습을 모니터 너머로 긴장한 채 지켜보았다.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밤들을 기억한다. 가라앉는 세월호가 비춰지는 TV 화면을 멍하니 보던 밤, 이태원의 거리가 펼쳐지는 SNS의 스크롤을 내리기를 그만두었던 밤. 무언가 무너져 간다고 느끼던 밤들이었다. 무엇이 무너져 내렸는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글은 비현실적인 밤과 그것을 지나 우리가 마주한 현실적인 아침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12월 3일 오후 12시 23분, 대통령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는 야당 주도의 국회가 ‘내란을 획책하고 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종북 반국가세력’이라 규정하고, ‘국가의 정상화와 자유 대한민국의 영속성을 위해 이들을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극단적인 인식은 대통령과 일부 행정, 군사 관료들의 왜곡된 국가관과 정치관을 보여준다. 정치적 반대 세력이 곧 반국가세력이라는 비약은 자신들만이 국가라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주장이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적 조치도 가능하다는 사고는 정치를 갈등과 타협의 산물이 아니라 물리적 폭력으로 환원한다. 지난 밤 모두가 목도한 것은 국가의 사유화와 정치의 군사화였다.
 그들의 상상하고 참칭한 ‘당신들의 국가’는 시민들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갑작스러운 계엄 발표와 이어진 계엄사의 포고령은 그 자체로 상징 폭력이었다.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포고 앞에서 시민들은 스스로의 안전과 삶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기분에 휩싸였고, 본인이 ‘선량한 일반 국민들’인지 점검해야 했다. 군대가 국가를 장악할까? 나와 친구들은 안전할 수 있을까? 배경을 알 수 없는 속보들은 수도방위사령부, 헬기, 벙커와 같은 생경한 군사적 언어들로 가득 찼다. 장갑차가 돌아다닌다, 당적을 가진 이는 조심해라, 온라인에서 정부를 비판하지 말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하려는 계엄군을 보좌진들이 막아세우는 장면은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상식이 실은 당연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충분했다. 계엄령 선포에서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하고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기까지 6시간, 그러나 그 길이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내 일상이 파괴될 수 있다는 모멸감이었다. 실시간으로 그것을 지켜보았든, 자고 일어나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그 상황을 목도하며 충격에 빠졌든 상관없이.
 그러나 일상은 어젯밤 갑자기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이미 균열을 겪고 있었다. 연이은 산업재해, 도심의 거리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 딥페이크 범죄와 젠더 차별의 심화, 후퇴하는 기후 정책, 혼란스러운 교착상태에 빠진 의료시스템, 끝없는 의문에 처한 어느 병사의 죽음…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그저 나열되었을 뿐,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그것을 낳은 원인과 대안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이는 없었다.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바꾸는 것이 정치의 역할일 때, 제도적 정치 체계를 자임하는 이들은 답을 주지 못했다. 정부와 여당은 상황을 무마하는 데 급급했고, 야당은 영부인 문제나 선거 공천 개입 등의 사안에서 대통령 개인의 비위를 조명하는 데 더 집중했다. 일상의 균열을 느낀 시민들의 정치적 무력감은 커져 갔다. 정치는 이미 당신들의 것이었다.
 계엄 선포는 만연한 정치적 무력감을 비집고 들어와 그것을 정치의 죽음으로 변모시키려는 시도였다. 더 이상 사람들이 자신을 대변할 정치를 찾지 않을 때, 누군가를 대변할 것 없이 정치를 무력화시키고 국가를 원하는 대로 휘두르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였다. 시민들은 정치를 아예 외면하거나 포기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출구가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자조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의 일상에 대해 자조할 권한마저 앗아가려는 권력에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내가 가져야 하는 권한은 자조만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국회와 야당은 이러한 비현실적인 위기 상황에서 분명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정치의 죽음을 거부하고 제도와 질서를 ‘정상화’ 했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자가 될 수는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언어로 그렇게 했지만 우리의 삶은 그것을 넘어서는 것을 늘 요청해왔다. 일상을 파괴하는 힘은 계엄 선포와 같은 비현실적 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늘 밀착해 있다. 조속한 탄핵과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치의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정치적 무력감으로의 대체가 아니라, 다른 정치를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비현실적인 밤에만 머물러 있을 것만이 아니라 현실 안의 비현실들을, 혹은 현실 그 자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들의 국가도, 공허한 구원의 서사도 아닌 그 너머의 정치가 무엇일 수 있는지 상상해야 한다. 정치는 새로운 ‘우리’를 만들고, 그러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설명하려 애쓰며 또 바꾸어내는 일이다. 노동자들이, 참사의 피해자들이,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비인간과 자연이, 의료인과 환자들이, 국가의 희생자들이 어떻게 함께 우리가 될 수 있을까? 국회 진입을 막아서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던 시민들과, 청사 안팎에서 총을 굳게 들고 두려움인지 공허함인지 모를 눈빛을 갖고 있던 군인들과,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많은 이들은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를 가로막는,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는 그 무엇에 어떻게 맞서고 그것을 비틀 수 있을까? 정치의 죽음이라는 오만한 시도가 거론될 수조차 없도록, 거대 정당과 국가를 포함하는 그러나 그것을 꼭 경유할 필요는 없는, 새로운 정치의 경로와 주체를 찾아야 한다.
 계엄 선포 이후 불가피하게 본관 점거를 해제했던 동덕여대 학우들은 다시 돌아간 본관에서 자신들을 막고 있는 직원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들은 계엄군도 경찰도 아니었지만 그곳에 있었다. 비현실적인 밤이 지나고 현실적인 아침이 찾아왔을 때, 이러한 대치는 도처에서 일어난다. 그것들은 어떤 의미에서 비현실적인 지난 밤과 놀랍도록 비슷하지만 놀랍도록 주목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가장 비현실적인 기억을 간직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우리’라는 현실을 만들어가야 한다. 당신들의 국가가 아닌 그 너머의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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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과학학과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