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바랍니다
― ‘위헌 계엄, 윤석열 퇴진’ 말고도 해야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지난 5일 전체학생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윤석열 퇴진 요구’라는 안건에 2,707명의 학부생이 아크로폴리스에 모였습니다. 안건지에서 보았듯, 우리가 모인 이유 중 하나는 “학우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학문 공동체’와 그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총회에서 모든 목소리는 ‘위헌 계엄, 윤석열 퇴진’으로 모였습니다.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했는지, ‘우리’를 구성하는 개별 존재들의 차이들이 존중됐는지, ‘윤석열 퇴진’과 함께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우리’를 공동체라고 부르기 위해서 어떤 발화가 더 필요한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쿠데타 이전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바랍니다.
위헌 쿠데타 이후 윤석열의 퇴진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우리의 삶은 어떠했는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2014년의 세월호, 2022년의 이태원, 2023년의 오송, 2024년의 화성 아리셀을 본 ‘우리’는 어떤 감각을 살아가고 있는지, 윤석열 정권 속에서 ‘우리’의 삶은 어떠했는지, 여성, (불안정)노동자, 장애인, 청년, 청소년, 성소수자, 홈리스, 성노동자, 미등록이주민, 동물을 비롯하여 여기에 모두 나열할 수 없는 소수자의 삶이 얼마나 많이 파괴되었는지, 우리는 ‘안전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국민’이라는 범주 밖으로 밀려나 지워진 ‘비국민’의 존재와 목소리가 과연 없었는지, 이들이 정말 지워져도 괜찮은 존재인지, 절멸의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았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윤석열 퇴진’이라는 목소리를 와해시키는 것이 아닌, 목소리를 확장하고 공명하게 만들어 ‘윤석열 퇴진’을 더 크게 외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윤석열 퇴진’과 함께 군대와 군사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바랍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의 제주, 1980년의 광주, 1987년의 서울이 역사와 기억에 남아 있는 이 땅에서 며칠 전 계엄군을 보았습니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군대의 역할을 다시 물어야 할 때입니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비국민’의 사살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역시 질문해야 합니다. 이른바 ‘젠더 갈등’을 넘어서 평화를 위해 지금의 군사 조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지금 군대에 있는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의 삶은 어떠하며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물어야 합니다. ROTC, 사관학교, 징병제를 비롯하여 군사주의를 (재)생산하는 다양한 제도를 문제 삼아야 하는 게 아닐지, 안보와 평화를 위해서 현 수준의 군비 지출이 꼭 필요한지, 필요 없는 군비는 감축하여 복지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 제도에 사용해야 하는 게 아닐지를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이 오갈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우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윤석열의 퇴진, 책임자의 처벌, 위헌 정당의 해산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할 것잉ㄴ지, 그동안 배제되었던 삶과 몸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더 포용적이고 열린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그 누구의 이야기를 뒤로 미루지 않고도 어려움을 넘어설 방법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 내부의 다양한 차이들은 분리주의에 활용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가 다른 위치에 있음을 인식하면서 억압, 지배, 배제의 다양한 형태를 질문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이러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학 ‘공동체’를 바랍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대학(원)생, 연구자, 교수로만 이루어진 학문 공동체가 아닙니다. 청소, 경비, 조리, 행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학을 돌보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건물과 ‘자연’을 이루는 다양한 생명체와 물질이 있습니다. ‘대학’이라는 공간과 ‘학내 구성원’이라는 말은 이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합니다.저는 이 공간을 공동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다시 공동체라고 불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와 삶을 지우지 않는다’라는 최소한의 전제 속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안전하게, 또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바라비다. ‘학내 구성원’들이 각자 놓인 위치를 인식하면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얻은 경험, 감각, 생각을 서로 듣고,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학생총회를 계기로 이러한 공론장과 공동체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탈정치’부터 팬데믹과 쿠데타까지 거친 우리가 다시 모여서 사회를 향한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