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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같은 소리, 이제 그만 좀 하십시오

아시아언어문명학부 23학번 학부생

중립 같은 소리, 이제 그만 좀 하십시오


 덩어리와 뭉치의 시대입니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며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 따져 묻는 세상입니다. 그 누구의 편도 아닌 오직 진실과 정의의 편이라 항변할 뿐이지만, 그저 항변할 뿐인 처지입니다. 환경이 바뀌면 생물은 진화합니다. 진화의 법칙을 따르는 건 인간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 덩어리와 뭉치의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종(種)은 여러분, 바로 ‘중립’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안에 대해 중립을 선언합니다.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 균형의 편이라 당당히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편을 물을 때 오히려 중립의 편에 서라 요구하니, 항변(抗辯)이 아니라 강변(强辯)이라 말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문제는 여러분들께서 강변을 논변(論辨)이라 착각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들은 SNL 같은 코미디 쇼에서 한 쪽이 아닌 모든 쪽을 풍자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은 종들은 ‘우익’ 혹은 ‘좌익’이라 명명합니다. 12월 3일, 군인이 국회를 짓밟고 우리 사회를 정초하는 신뢰를 무너뜨렸을 때, 그것의 진정한 의도를 보자며 차라리 침묵할 것을 주문합니다. 여러분들은 옳은 점보다 틀린 점을 먼저 봅니다. 다른 점은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이 이성의 편에 서는 일이며, 상식을 앞세우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덩어리와 뭉치의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 새로운 종족이 서식하는 방법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새로운 종족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성을 갈며 끈질기게 연명해 온 ‘무지와 무식’입니다.
 어느 쪽의 이야기도 듣지 않은 채 틀린 점만 보는 것은 중립적이지 않고 공격적입니다. 그런 태도는 생산적인 논의를 방해하고 건전한 담론 형성을 막습니다.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기 위함이라 변명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변명에 불과합니다. 여러분들은 생각하지 않기에 편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모르기에 들리는 것만 집어내 공격하는 것입니다. 덩어리와 뭉치에서, 파편과 조각을 찾아내는 일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먼저’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나중에’ 말을 덧붙일 뿐입니다. 누군가 말하기 전까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무지합니다. 사유하기를 포기하였으니. 그래서 여러분들은 무식합니다. 상식을 알려 하지 않으니. 남은 부끄러움은 중립이라는 포장지로 얼기설기 덮어버릴 뿐입니다.
 무지와 무식은 늘 존재해 왔습니다. 언젠가 여러분들의 조상은 그것을 ‘이성’이라 치장하여 소크라테스를 죽였고, 몇몇은 ‘상식’이라 꾸며내 전체주의의 시대를 불러왔죠. 그 악습은 시대에 순응하여 오늘날 여러분, 곧 ‘중립’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지와 무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집단에 대해, 사유하지 않은 추태를 당당히 여기며 공론장을 어지럽히는 이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말하지 말라 종용하는 자들에 대해.
 무지와 무식을 당당히 여기지 마십시오.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남은 부끄러움을 덮으려 하지 마십시오. 덮지 말고 마주하십시오. 그리고 사유하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보고 자신을 응시하십시오. 그것만이 돌연변이로 멸종하지 않은 채 덩어리와 뭉치의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갈 유일한 방법입니다.

2024년 12월 12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아시아언어문명학부 23학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