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서 아름다운, 탄핵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12월 7일 토요일 국회 안,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첫 번째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집단 퇴장으로 표결이 성사되지 못해 폐기되었다.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규탄하기보다 당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똘똘’ 뭉쳐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국민의 대표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그런 모습이었다.
같은 날 국회 밖, 영하의 추위를 뚫고 광장에 모인 수십만의 사람들도 ‘똘똘’ 뭉쳐 있었다. 권력을 견제하는 주권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모두가 하나였다. 권위주의의 유령을 내쫓으려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불꽃이 하나로 웅장하게 타올랐다.
같은 ‘똘똘’이지만 유난히 달랐던 점이 있다면, 광장에는 다양한 얼굴과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함께였다는 것이다. 여러 색과 문양의 깃발이 펄럭였다는 것이다. 그날 국회 밖은 다른 어디보다도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광장이었다. 광장에서 들리는 소리의 크기와 높낮이가 다양했지만, 분명 소음이 아니라 목소리였다.
우리 사회에서 환영받기보다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비난을 더 많이 받았던 사람들도 그곳에 있었다. 노동조합,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공동체, 자유를 말하는 장애인 단체들이 함께 그곳에 있었다. 그 사람들이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깃발과 기민함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왜 깃발이 필요했을까? 처절하게 싸워야만 했던 지난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기민하게 뛰쳐나올 수 있었을까? 불합리와 억압의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문제라 인식하며, 함께 모여 외치고 쟁취해 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탄핵으로 얻어내는 것이 그저 탄핵만은 아니어야 한다. 탄핵 이후의 세상은 탄핵 이전의 세상과 비교해 눈에 띄게 좋아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두에 의한 탄핵을 위한 운동’이 펼쳐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주문한다.
하나, 계엄과 폭압이 무(無)로부터 출현한 게 아니란 걸 기억하자. 생명을 생명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던 정권이니까, 새삼스러울 것 없이 국민을 국민으로, 헌법을 헌법으로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선량한 시민의 행복’과 ‘반국가세력’을 구분하는 윤석열의 수사(修辭)와 정치는 누군가에게는 이미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곁에 살고 있는 생명을 생명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존엄하게 대우하는 일은 결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없다. 사태의 표면 아래, 그 뿌리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아크로폴리스에서도 5년 7개월 만에 전체학생총회가 열렸다. 오랜만에 부활한 거대한 학생사회 공론장에서, 헌법을 헌법으로, 국민을 국민으로 대우하지 않는 대통령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하지만 이전부터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던 사람들, 생명으로 대우받지 못하던 생명들의 이야기는 과연 충분히 담겼던가.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 이태원 참사가 거짓으로 꾸며졌다던 음모론 주장, 장애인 이동권 시위 탄압, 채 해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 동성애가 공산주의 혁명의 수단이라던 뉴라이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임명, ‘그런 이야기’들까지도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둘, 탄핵 광장에 가서, 혐오와 편견, 묵살과 배제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한지, 미루지 말고 꼭 성찰하자.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퇴진 시위를 겪으며 자라난 젊은 활동가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찾아갔다. 소신 있게 광장에 나온 주인으로서, 진정한 동지(同志)로서 대우받기를 원한다. 그래야만 정말로 아름다운 시민 정신이 가득한, ‘세대가 교체된’ 광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 2차 가해로 유죄 판결을 받고도 사과하지 않고 마이크를 쥔 촛불행동 상임대표, 성노동자를 비하하는 ‘나이스 쥴리’를 열창하던 민중가수, 젊은 여성을 집회 참여의 유인책 정도로 취급하던 정당인, 윤석열의 망동을 인지장애나 망상장애에 비유한 정치인의 발언. 이러한 문제들을 비판하고 ‘모두의 구호’를 고민하는 일도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바로’ 하기를 원한다. ‘나중에’ 존재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셋, 탄핵 광장 밖 여기저기에서도 민주주의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자.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는 공간과 절차를 지키려는 동덕여대의 투쟁, 생업을 이어가기 위해 34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의 투쟁, 사랑을 인정받기 위한 성소수자들의 투쟁, 강제 격리와 강박을 거부하는 정신장애인들의 투쟁,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계속되고 있는 다른 여러 투쟁들은 탄핵 광장과 생각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계엄이 끝나고 대통령이 탄핵되어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그것이 별로 안온하지 않은 사람들, 하루하루를 걱정 속에 힘겹게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학생사회와 시민운동은 소수자를 향하던 윤석열의 총구가 모든 국민에게 향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탄핵이 끝나고도 지금의 불씨를 소중히 간직하자. 윤석열을 향하고 있는 횃불의 열기를 ‘안온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해 온기로 나누어 갖자.
당신의 일상은 안온한가 힘겨운가. 힘겨운 일상에 치여 살아가던 어느 날, 뉴스에서 탄핵 광장에 휘날리는 깃발과 응원봉들을 보고 호기심이 생기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깃발과 기민함을 준비하자. 민주주의는 국민의 힘으로 ‘국민의힘’을 밀어내는 날 저절로 완성된 자태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광장에서 투쟁하고 일상에서 실천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당신, 당신 곁에 살아가는 시민, 가장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리, 안전, 삶이 보장되는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