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선생님께 국어국문학과 제자들이 묻습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령 선포로 두려움에 떨던 12월 3일의 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나둘씩 드러나던 구체적인 내란의 정황과 증거들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거짓과 회피로 일관하던 책임자들을 우리는 여전히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비참과 절망, 공포와 분노를 우리는 피부로 느꼈습니다. 탄핵이 가결되고 정국이 변화한 지금까지도 이는 분명한 현실입니다. 한데 선생님이 최근에 기고한 칼럼들을 읽은 우리는 몇 가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작금의 사태를 거짓과 혼란 그 자체로 평가하시는 선생님은,‘광란의 바다’를 관조하는 객관적 관찰자를 자처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11월 11일의 칼럼을 쓰신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은 다른 곳에 있”고, 정권 교체에도 진상은 규명되지 않은 채 “모두들 딴전을 피웠”다고 쓰실 때, 선생님이 찾고자 하는 진실은 그 누구의 거짓말입니까. 다시 한 번 정권이 바뀌고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자 “원인은 이번에도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정부로 책임을 돌리려고들 했다”고 쓰실 때, 선생님이 묻고자 하는 책임은 무엇을 위한 회피입니까. 중립과 진실을 표방하는 선생님의 눈과 귀가, 입과 펜이 기묘하게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느낌을 우리는 도무지 지울 수 없습니다.
첫 탄핵안이 폐기된 직후인 12월 9일 칼럼에 선생님은 쓰셨습니다.
“벗들아, 그대들은 아는가? 그대들이 본 것은 진리가 아니었음을. 사막의 신기루, 씻겨버릴 오물, 녹아버릴 3월의 눈, 말라붙은 쥐오줌, 썩어가는 분뇨더미, 악취 나는 노숙자 발바닥 같은 것들을 아는가? 우리가 우리를 속여왔음을 아는가? 스스로 최면을 걸고, 주박에 걸려, 앞뒤 모르고, 좌우도 모르고 날뛰고 있음을 아는가? 하늘 높이 우리의 부끄러움이 효수가 되어 걸려 있는 것을 아는가?”
계엄령 이후의 치명적인 혼란을 우리는 여전히 피부로 느낍니다. 윤석열의 위법한 권력 행사에 짓눌린 우리에게 진실은 쉽게 다가와주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혼란, 우리의 분노, 우리의 몸부림은 진실에 다가서려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사실입니다. 선생님이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충고하듯 호명한 ‘벗들’은 정녕 우리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온몸으로 나아가 간신히 닿으려는 그것을 먼저 보고 있노라고 선생님은 자부합니다. 우리의 진실을 선생님이 앞장서서 단언할 때, 우리가 선생님의 기꺼운 ‘벗들’로 남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12월 16일의 칼럼에서 선생님의 시선이 머문 자리에 물음을 남깁니다. “심상치 않게 술렁이는” 여의도를 지나쳐 선생님의 발길이 닿은 곳은 “광화문”이었습니다. 탄핵 반대집회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처절한 묘사의 뒤편에서, 선생님이 가짜뉴스로 일축해버린 또 다른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4・3사건을 ‘제주폭동’으로 명시한 방첩사의 문건을, ‘몰랐다’는 부인과는 달리 사전에 계엄을 모의한 정황을,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선관위를 점거하려던 실제적인 시도를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의 운명의 날”임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그날이 “우리의 운명의 날”임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진실과 광기는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그 진실과 광기의 자리에는 도대체 누가 살고 있습니까. 여기 이렇게 살아있는 우리 모두가, 선생님에게도 과연 보이는지 묻습니다.
다시 지난 9일의 칼럼에서 선생님은 쓰셨습니다.
“벗들아, 그대들이 눈이 없는 걸 아는가? 냄새도 맡지 못하는 색맹인 것을 아는가?”
현재의 혼란을 “미친 바다”의 광증과 병리적 현상으로 환원하고자, 선생님은 다분히 장애차별적인 혐오 표현들을 수사로 동원합니다. 국어국문학과에서 우리는 단어 하나를 고를 때에도 깊은 사유를 담는 섬세함을, 누구도 함부로 모욕하지 않으려는 신중함을 배웁니다. 정치적 판단과 개별적 성향을 떠나더라도 세 편의 칼럼 속 선생님의 언어는, 인문학적 가치를 훼손하고 우리 학과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있습니다. 깊은 실망과 크나큰 우려를 재차 표하며,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우리가 몸으로 겪은 생생한 사실을 묵살하는 ‘진실’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하늘 높이 효수가 되어’ 걸려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의 부끄러움입니까.
선생님의 답장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