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신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지난 2월 28일, 서울시교육청 앞에는 많은 인파가 모였다. 지난 2023년부터 학교 내 성폭력 사건 해결과 피해 학생 보호를 위해 노력했으나 그 결과로 부당 전보 및 해임이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던 지혜복 교사, 그리고 지혜복 교사와 연대하는 시민들은 정근식 교육감의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되돌아온 것은 경찰의 폭력적인 대응이었다. 23명의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연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한 시민은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계엄이 선포되고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로 침입했던 장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자행된 것이다.
이후 정근식 교육감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이것이 정근식 교육감이 “필요한 조치를 경찰에 요청”한 결과임이 알려졌다. 해당 게시물에 덧붙은 “집회 참여자들의 건강과 심리적 안정에 대한 배려 요청”, 그리고 “업무 마비에 대한 우려”라는 말들은 문제의 본질을 덮을 수 없다. 그러한 말들로 정근식 교육감이 지혜복 교사의 부당전보/해임 사건에, 나아가서는 근본적으로 학교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그러한 말들로 정근식 교육감이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 해산을 요구했다는 책임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2년 전 사회학과에서 정년퇴직하신 정근식 ‘선생님’께 묻습니다.
저희들은 선생님께 학내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책임 있게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2017년부터 사회학과 H교수의 권력형 성폭력 및 갑질 문제가 공론화되고, 학생들이 천막을 세우고 자퇴서를 제출하며 농성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2018년 당시 총장 후보로 출마하셨던 선생님께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의견을 질문했을 때, “갑질, 성폭력은 없어져야 한다”고 답하셨던 것1)을 기억합니다. 정당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 공동체적 해결을 위해 수년간 학과 공동체 전체가 씨름했던 것을, 학생들이 선생님들께 호소하고 요구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희는 식민지와 한국전쟁 시기,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자행된 국가폭력의 문제에 깊이 천착했던 선생님의 연구를 기억합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셨을 때, 국가폭력의 유산을 극복하고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고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사회적 타자나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들의 성원권을 인정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서의 민주화를 촉구하던 선생님의 글2)을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1) **학생, 교수, 직원과 함께 가는 ‘동행총장’이 되겠다**, 서울대저널 제27대총장선출 정책평가 특집호, 2018.5.14. http://www.snujin.com/37869]
2) 정근식, 「차별 또는 배제의 정치와 ‘소수자’의 사회사 재구성」, 『경제와사회』 100, 2013..
선생님께서 지금 서 계신 곳은 어디입니까?
이미 은퇴한 교수라며 선을 긋고 외면하는 것은 쉽습니다. 수치스럽다고 말하면서 제자였던 ‘우리’와 선생님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은 조금 더 어렵지만, 그래도 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학과에, 학계에 여전히 존재하는 연결고리들을 마주하면서 선생님을 비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생님께 이 기억들을 마주하라고 요구합니다. 스스로의 책임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합니다. 시민들에 대한 폭력적인 조치에, 지혜복 교사의 부당해임에, 학내 성폭력 사건을 향한 미온적인 태도에 사과할 것을 요구합니다. 아름다운 과거에 기대는 대신, 과거가 남긴 가르침을 현재에 수행하라고 요구합니다.
권력의 폭력을 비판하던 당신이 이제는 스스로 그 폭력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냐고, 우리는 묻습니다.